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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AI

AI 시대의 승자가 안 보이는 건 아직 일러서가 아니다 — 역산업화 가설

AI 시대의 승자가 안 보이는 건 아직 일러서가 아니다 — 역산업화 가설

인터넷엔 구글이 있었고, 모바일엔 카카오가 있었다. 그럼 AI 시대의 쿠팡은 누구인가. AI 시대의 카카오톡은, 유튜브는, 넷플릭스는, 배달의민족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후보는 여럿인데 "이 회사가 시대를 먹었다" 싶은 이름이 없다.

데이터블·바이브미디어랩 대표 이종대(쫑대표)는 여기서 통상적인 답과 다른 결론을 내놓는다. 아직 이른 게 아니라 안 나올 구조라는 것이다. 그는 이 흐름을 '역산업화'라고 부른다.

출근은 200년짜리 예외다

논지의 출발점은 200년 전이다.

우리는 회사 다니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고, 어딘가에 소속되는 것. 그런데 이건 200년밖에 안 된 습관이다. 그 앞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서 일했다. 베틀도 집에 있었고, 대장간도 집에 붙어 있었고, 밭도 집 옆이었다.

산업혁명이 그걸 바꿨다. 정확히는 기계가 너무 비싸져서 바꿨다. 집집마다 있던 베틀이 공장의 대형 기계로 대체됐는데, 그 기계는 개인이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자기 도구를 잃었고, 도구가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그게 출근이다. 기계를 부수던 러다이트 운동은 도구를 빼앗긴 사람들의 저항이었다.

순서를 보면 더 분명해진다. 사람이 기계 옆에 붙어 있어야 하는 구조가 먼저 생겼고, 그 구조가 만든 문제를 나중에 영국 공장법이 손봤다. 기술이 형태를 만들고 제도가 뒤따라갔다. 정해진 출근 시간, 한 건물에 모이는 방식, 소속이라는 개념. 전부 비싼 기계를 여럿이 나눠 쓰려니 생긴 규칙이었다.

인터넷도 모바일도 이 구조를 안 건드렸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꿨잖아"라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맞다. 다만 무엇을 바꿨는지를 봐야 한다.

인터넷은 유통을 바꿨고, 모바일은 접근을 바꿨다. 편지가 메일이 되고 매장이 앱이 됐다. 화면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런데 그 뒤는 그대로였다. 서버는 여전히 비쌌고, 개발자는 여전히 필요했고, 그래서 사람은 여전히 회사에 모여야 했다. 도구값이 안 내려갔다.

새 승자가 나온 이유도 여기 있다. 즐기는 화면이 통째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PC 웹에서 손안의 앱으로, 사용자 경험이 전부 갈아엎어졌다. 그런데 AI는 어떤가. 우리는 여전히 같은 검색창, 같은 쇼핑앱을 쓴다. 화면이 안 바뀌니 원래 주인이 그대로 이긴다. 새 거인이 앉을 자리가 없다.

대신 바뀐 건 지능의 가격이다

진짜 변화는 화면이 아니라 도구값에서 터졌다.

예전엔 택시 기사 머릿속 서울 길 지도가 비싼 기술이었다. 그 지도를 가진 사람만 그 일을 할 수 있었다. 내비게이션이 그걸 공짜로 만들었다. 지금은 의사·변호사·회계사 머릿속 지식까지 같은 길을 가고 있다.

개발자 다섯이 붙어야 했던 일을 한 사람이 한다. 디자이너를 못 구해서 못 하던 걸 그냥 한다. 번역, 편집, 분석, 상담 응대. 전에는 사람을 뽑아야 했던 일들이 도구로 내려왔다.

200년 전에는 도구가 비싸져서 사람이 공장으로 갔다. 지금은 도구가 싸져서 공장에 안 가도 되는 상황이다. 방향이 반대다. 그래서 역산업화다. 새로운 일이 아니라 200년 전 일이 되감기는 것이다.

반론 세 가지와 그에 대한 답

"결국 도구일 뿐, 판단은 사람이 한다." 맞다. 그런데 산업혁명 때도 같은 말이 있었다. 기계가 실을 뽑아도 어떤 옷을 만들지는 사람이 정한다고. 그 말도 맞았지만, 그 사이 일하는 장소와 소속은 완전히 바뀌었다. 판단이 남는다고 구조가 그대로인 건 아니다.

"그래도 결국 큰 회사가 이기지 않나." 정당한 반문이다. 지금도 돈은 큰 회사로 몰리고 인프라는 몇 곳이 쥐고 있다. 다만 큰 회사가 커지는 방식이 달라졌다. 예전엔 커지려면 사람을 뽑아야 했고, 지금은 커지면서 사람을 줄인다. 그러니까 회사가 이기느냐 개인이 이기느냐가 질문이 아닐 수 있다. 회사는 계속 이기는데 그 안에 자리가 줄어드는 것이다. 이게 더 불편한 그림이고, 그래서 제일 위험한 건 회사 밖이 아니라 "회사 안이면 안전하다"고 믿는 쪽일 수 있다.

"혼자 다 하는 건 결국 소수 아닌가." 이것도 맞다. 직원 없이 큰 매출을 내는 사람들은 아직 예외에 가깝고, 드러난 한 명 뒤에 안 드러난 아흔아홉이 있다. 다만 예외가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신호다. 20년 전에는 그런 예외가 아예 불가능했다. 서버값, 개발자 인건비, 유통망이라는 개인이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지금은 그 벽이 낮아져 예외가 나올 수 있는 조건이 됐다. 조건이 바뀌면 빈도도 따라 바뀐다.

지금 세어볼 것: 회사 밖에서도 값이 매겨지는 일

필자가 제안하는 실천은 거창하지 않다. 한 가지를 세어보라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는 일 중에 회사 밖에서도 값이 매겨지는 게 몇 개인가.

회사 안에서만 통하는 일이 있다. 우리 회사 결재선을 아는 것, 우리 시스템에 익숙한 것. 유용하지만 밖으로 못 가져간다. 반대로 밖에서도 값이 붙는 일이 있다. 만들 줄 아는 것, 팔 줄 아는 것, 판단할 줄 아는 것. 이 비율이 앞으로의 안전판이다.

세는 방법도 간단하다. 지난 한 달 동안 한 일을 적어놓고, 각 줄 옆에 "이걸 다른 곳에서도 돈 받고 할 수 있나"를 표시한다. 절반도 안 되면 지금부터 늘리면 되고, 이미 넘는다면 걱정할 게 없다. 늘리는 방법도 특별하지 않다. 회사 일 중에 밖에서도 통하는 종류를 골라 더 깊이 들어가거나, 안 해본 걸 작게 시작해보는 것. 예전엔 그 시작에 돈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 비용이 많이 내려갔다는 게 이 글의 전제다.

마케터에게: 도구가 아니라 축적을 본다

마케팅 실무 관점에서 이 가설이 갖는 함의는 두 갈래다.

하나는 조직 쪽이다. 콘텐츠 제작, 디자인, 번역, 리서치, 리포트 작성처럼 그동안 인력 규모로 처리하던 업무가 도구로 내려오고 있다. 그렇다면 팀의 경쟁력은 몇 명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축적했는가로 옮겨간다. 도구 도입 자체는 격차를 만들지 못한다는 관점은 쏘카와 삼쩜삼이 시행착오 끝에 찾은 진짜 'AI 격차'와 같은 결이다.

다른 하나는 개인 쪽이다. AI가 지식 접근 비용을 낮췄다면, 지식을 아는 것보다 무엇을 물을지 아는 쪽이 남는다. 같은 문제를 다룬 관점은 검색창을 닫은 사람들에서 볼 수 있다.

필자도 이 글이 예언이 아니라고 못 박는다. 200년 전에 실제로 벌어진 일과 지금 벌어지는 일의 방향이 반대라는 관찰이라는 것. 이 방향이 얼마나 갈지, 어디서 멈출지는 그도 모른다고 말한다. 남는 질문은 하나다. 당신의 도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회사에 있는가, 손에 있는가.

자주 묻는 질문

'역산업화'는 무슨 뜻인가요?

산업혁명이 비싼 기계 때문에 개인의 도구를 공장으로 모았다면, 지금은 도구값이 내려가면서 도구가 개인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관찰입니다. 방향이 반대라는 의미에서 역산업화입니다.

왜 AI 시대에는 새로운 승자가 안 보이나요?

필자는 화면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PC 웹에서 모바일 앱으로 갈 때는 사용자 경험이 통째로 바뀌어 새 거인이 나왔지만, AI는 같은 검색창·같은 쇼핑앱을 쓰게 두어 기존 주인이 그대로 이깁니다.

큰 회사가 계속 이기는 것 아닌가요?

필자도 그 점은 인정합니다. 다만 커지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봅니다. 예전엔 커지려면 사람을 뽑았지만 지금은 커지면서 사람을 줄이므로, 회사는 이기는데 그 안의 자리는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실무자가 지금 할 수 있는 점검은 무엇인가요?

지난 한 달간 한 일을 적고 각 항목 옆에 '이걸 다른 곳에서도 돈 받고 할 수 있나'를 표시해 비율을 세어보는 것입니다. 회사 안에서만 통하는 일과 밖에서도 값이 붙는 일을 구분하는 방식입니다.

원문 출처: 모비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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